리즈성형칼럼

제목

전문직이 비즈니스가 되면,

전문직이 비즈니스가 되면,

 

진료실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와 대면할 때면, 항상 머리 속을 맴도는 생각이 있다. 의사는 본질적으로 전문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직업을 가리키는 영어 표현 중 '전문직'으로 번역되는 'profession'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보통 이와 대비되어 쓰이는 'business'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직업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profession'이라는 말은, 그 종사자들 자신이 "헌신하겠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한 활동이나 직업을 말한다. 이들의 '삶의 방식들'이란 당연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의사는 건강과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고 환자들의 치료에 헌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의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며, 의료를 적정하고 공정하게 시행하여 인류의 건강을 보호 증진함에 헌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전문직 종사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자가 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그것은 우리의 도덕적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문직은 실제로도 윤리적인 직업이다. 우리는 "전문직이란 해당 분야에 대한 높은 수준의 기술과 지식을 필요로 하며 일정한 자격이 요구"되고 "봉사를 주된 목표로 삼으며 기술과 지식을 사회적으로 유익하게 사용할 책임을 지닌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금전적 보수를 일차적인 목적으로 추구하지 않으며 물질적인 부를 획득하는 것을 자신의 직업상 성공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얘기들은 공자님 말씀처럼 교과서에나 나오는 한가한 소리라고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 주변에서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비리 행위가 심심치 않게 보고된다. 사실 전문직 종사자들은 전문지식을 통하여 사회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들의 특정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그로 인해 주어지는 자율성이나 권세가 잘못 사용되는 경우 사회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

 

수년 전 성형외과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리수술 사건, 환자와 보호자들이 의료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이용해서 필요 없는 수술이나 검사를 무리하게 시켜 부작용을 만드는 병원들, 최근 TV 프로그램에 연예인처럼 패널로 출연하고는 자신과 관련된 상품을 홈쇼핑을 통해 판매하는 이른바 쇼닥터들이 알려지면서 사회로부터 예전의 믿음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제는 TV채널을 돌릴 때마다 너무 많은 의사들이 나와서 이것마저 식상한 느낌이 들기도 할 정도라고 해야 하겠다.

 

아직도 많은 의사들이 자신의 소임을 다하며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이런 사건들을 접하고 보면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게 있는 것도 사실로 보인다.

 

도덕성에 뿌리를 두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특성으로 하는 전문직 종사자에 의한 비리들이나 행태들이 심심치 않게 알려지면서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믿음을 잃고 있는 현상도 뚜렷하게 보인다. 요즘 벌어지는 촛불집회에서 보듯, 우리는 전문직 종사자들 개인뿐만 아니라 검찰과 같은 전문가 집단 자체가 우선적이고 핵심적인 개혁대상으로 지목되는 현상이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누구보다도 강한 도덕성이 요구되기에 그 잘못이 특별히 더 부각되면서 크게 조명을 받게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이런 비리 행위가 저질러지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전문직의 본분을 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고의적이든 아니든 그런 본분을 저버리고 영리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직업인으로 전락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환자보다는 자신의 이익에 보다 집중하게 되고 영업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수를 두게 되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처럼 이윤의 획득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고 물질적 및 금전적 가치가 중시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문직이 무슨 봉사활동도 아니고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다. 그리고 오늘날 현실에서 보통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나 법대에 진학하고 의사나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어 부와 권세를 누리는 꿈을 꾸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것이 어쩌면 지극히 일반적이고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전문직 종사자도 직업인인 이상 생계가 유지되어야 한다.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하는 봉사활동을 직업이라고 할 수 없듯이, 전문직이 무료봉사만 한다면 그것 또한 직업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한 비즈니스가 영리 추구를 주요 목적으로 한다고 윤리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도 아니다. 비즈니스가 윤리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직업이 아니다. 마치 도둑질이나 강도질, 사기 혹은 도박, 매춘 등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직업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어떤 직업이든 그것이 바람직한 직업이려면 생계유지는 물론 윤리성도 함께 갖추어야 한다. 거기에다가 자아실현까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결국 현실이 어떠하든 전문직은 본질적으로 윤리적인 직업이다. 영리나 이윤 추구가 주목적이 되는 이른바 비즈니스가 될 수 없고 또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영리병원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특히 전문직 종사자들이 본분을 망각하고 돈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우, 그것은 필연적으로 범죄적 수준의 비리로 연결되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보아 전문직은 금전적이거나 물질적인 가치와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냥 '직업'이거나 '비즈니스'가 아니라 '전문직(profession)'인 것이다.

 

첨부파일 다운로드

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9-11-20

조회수9,991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인쇄하기
 
스팸방지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