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가 판치는 세상
요즘 대한민국은 요지경투성이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이런 속임수가 판을 치고 있어서 내가 직접 하지 않은 것은 쉽게 믿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믿음이 끈이 하나씩 풀려나가는 것을 느끼게 한다.
추운 날씨에 음식을 배달하는 배달원에게 미안할 수 있는 일이지만, 배달 음식에 대한 믿음이 예전 같지 않다. 다양한 음식들이 책자에 나와 있어서 이것저것 고르는 재미도 있었지만, 얼마 전 보도된, TV 고발 프로그램에서 한 책자에 나와 있는 모든 식당이 한 곳이었다는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에 쓴웃음을 지은 기억이 난다.
‘매일 시장에서 사오는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맛’, ‘천연조미료로 숙성시킨 깔끔한 맛’, ‘어머니의 손맛으로 만든 음식’ 같은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길 법한 이야기들이 모두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는 것은 차라리 애교라고 해야겠다. 주문이 있을 때마다 얼려 놓은, 언제 사 온 것인지도 모르는 재료에 조미료 범벅인 양념들과 내 가족이 먹을 음식이라면 감히 생각하고 싶지 않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음식을 만들고는 마치 제대로 만든 좋은 음식인 양 포장해서 배달되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이런 음식들이 맛있고 좋다는 여러 가지 인터넷 매체들의 선전에 현혹되어 이것이 건강에 나쁠 수 있다는 말은 온대간대 없이 오히려 문전성시를 이루니, 게다가 값이 싸고 양이 많아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아마 아르바이트 선전에 동원된 사람들이겠지만...)을 보면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집 근처 동네 식당이라도 위생적인 조리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직접 보이고, 먹어보고 내 입맛에 맞으면 맛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듯하다.
이런 것이 어찌 식당뿐이겠는가, 우리나라 여러 곳이 요지경이 되었지만, 병원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몇몇 분야는 거의 점입가경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주입된 필러가 녹지 않고 뼈를 손상시킨다.’는 자극적인 내용의 방송이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병원가에도 영향을 미친 적이 있다. 자못 전문적인 내용과 여러 가지 자료를 인용해서 필러가 우리 몸속에서 나쁜 성분으로 바뀌어 흘러 다니고, 심지어 뼈 주위에서 뼈를 녹일 수도 있다는 듣기에는 걱정스러운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작은 논문들을 자신의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짜깁기해서 실제 내용과는 전혀 다른 사실이 아닌 왜곡된 내용으로 둔갑시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일로 보톡스와 필러 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들이 적잖이 타격을 입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검증되지 않는 정보가 사회에 얼마나 잘못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하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회 여러 부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정보들을 ‘팩트 체크’를 거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는 불신사회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평소에 정상적으로 환자에게 잘 보고 있던 병원들은 일단 환자가 줄어서 피해를 보기도 하고, 여태 수술이나 시술해 오던 것도 환자들에게 의심을 받는 일이 생기니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 원인은 환자, 고객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단순히 상품이나 물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돈을 벌고 나면 그 다음은 환자에게 어떤 피해가 생겨도 외면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사람의 환자를 인격체로 보고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를 중요한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전문직이 비즈니스로 전락한 예라고 해야겠다.
한 번씩 싼 가격이나 요란스러운 광고에 호기심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구조가 들여다보인다. 아무래도 품질에 문제가 생기는 점은 어떻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떻게 하더라도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제품을 판매하는 일도 그런데, 사람의 몸을 상대로 하는 의료행위가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 다른 분야보다 더 싼 것이 비지떡인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일정한 수준을 보장해야 하는 의료행위는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고는 가격을 낮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의료 소비자들은 커다란 갈림길 앞에 섰다. 야바위같이 가격은 싸지만 품질은 신뢰하기 어려운 제품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가격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품질은 믿을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할 것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