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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환자

선풍기 환자

 

며칠 전 나에게 내원한 중년 여성 환자가 있다. 얼핏 얼굴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첫 인상이었는데,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면서 보니 조금 이상하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비해 주름이 거의 없다. 자연스럽게 있어야 할 주름이 없고 얼굴이 통통하다. 그런데, 얼굴 표정 주름도 하나 없이 마치 두꺼운 석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 같이 표정이 별로 없는 얼굴이다. 피부를 자세히 보니 땀구멍이 커져 있고, 얼굴의 톤이 번들번들하다. 그리고 무엇인가 피부 아래쪽에 무거운 무엇인가가 들어있는데, 이것이 아래로 처져 내려오면서 눈썹, 입술, 볼살, 턱선이 아래로 처져 있다. 이것이 바로 얼굴에 이물질이 들어간 특징적인 얼굴이다.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혹시 병원 아닌 곳에서 얼굴에 주사를 맞은 적이 있습니까?” 머뭇거리다가 10여년전에 아는 사람(보통 이런 경우, 항상 아는 사람의 소개로 싸게 맞았다고 한다. 그것도 자기만 특별히 싸게!!)에게서 얼굴에 콜라겐 주사를 맞았다고 한다. 자기만 구할 수 있는 일제 수입품? 수입 콜라겐이라고 했다고 한다.

 

보통 1년에 5-10명 정도가 그런 이유로 방문한다. 처음에는 아주 좋았다고 하면서 만족스럽게 지낸다고 한다. 효과가 좋다면서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도 해서 함께 맞고, 자신도 더 맞으면서 지낸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피부가 조금 딱딱해지기 시작하고, 땀구멍이 커지거나 더운 날씨, 혹은 사우나에서 맞은 부위가 붉은 색으로 약간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추운 날 외출하면 그 부위가 발갛게 부어오르기도 한다고 한다.

 

이러다가 몇 년 더 지나고 나면, 맞은 부위 피부 아래쪽에 단단한 멍울(혹 같은 물체)이 생기고 이것이 아래로 처져 내려오면서 만져지게 된다. 이러다가 보면 피부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 상태에서 주름이 더 심해지면 병원에 내원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되면 아무래도 자기 자신의 얼굴에 대한 자신감, 자존감이 없어져서 다른 사람을 잘 만나지도 못하고 가족 간의 관계도 나빠져서 외톨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 TV에서 보도된 선풍기 아줌마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도 이러한 불법시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배운 것도 부족함이 없고 교양이 있는 사람들도 무엇에 홀린 듯이 감쪽같이 마음이 끌려서 이런 주사를 맞는데, 이것은 거의 모두가 액체 실리콘이다. 이것은 1960년대 혹은 그 이전에 꺼진 곳을 채울 목적으로 병원에서 사용되다가 문제가 많이 생겨서 사용이 금지된 물질이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일단 주사로 우리 몸에 들어오면, 액체 상태로 우리 몸속에서 우리의 근육, 혈관, 신경사이에 스며들어 덩어리처럼 굳어 버리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단 우리 몸에 들어오면 100% 제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피부에 스며들게 되면 피부에 문제를 일으키고, 오랫동안 우리 몸속에 노출되어 있으면 면역반응을 일으켜서 여러 가지 다른 질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거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수술로 최대한 많이 제거할 수 있는 만큼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을 녹이는 주사나 먹는 약 같은 것은 아예 없다. 오직 수술 한 가지뿐인데, 그것이 어려운 일이다. 수술을 하다 보면 제거해야 할 덩어리 속에 신경, 혈관, 근육이 달라붙어서 하나로 보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 보면 출혈이 심해지거나, 신경에 손상을 입어 얼굴표정이 마비가 올 수 있고, 또 이것을 한꺼번에 제거하다 보면 그 부위가 푹 꺼져서 이것을 다시 만들어주는 재건 수술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쨌든 환자를 맡은 의사로 의무는 다 해야 하겠기에 어려운 일이지만 최대한 제거할 수 있는 만큼 제거한다. 그래서 시간과 노력도 2배 이상 든다. 하지만 결과는 그 보다 못하다. 왜냐하면 이미 조직이 손상을 많이 입었기 때문이다. 회복기간도 2배 이상 걸린다. 게다가 이것을 제거하고 나서 남은 꺼진 부위에 재건 수술도 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술하고 나면 어느 정도 상처가 나아지고, 피부 안쪽의 상처까지 좋아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적어도 1년 이상. 그래서 이 과정도 많이 힘들다. 환자는 힘들게 많은 비용을 들여서 수술했는데 금방 좋아지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병원을 원망하고 다닌다. 수술 전에 신신당부하며 다짐받았던 이야기는 금새 다 잊어버리고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제껏 여러 환자들이 이물질 제거수술을 했지만,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 젊은 아가씨가 콧등에 주사를 맞은 지 1개월 만에 내원한 경우였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이것을 알고 함께 와서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제거수술과 재건수술을 했는데, 거의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 외에는 그다지 좋은 결과는 보여주지 못하고 이물질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면역반응을 줄여주고 무게로 인한 피부 처짐, 피부 반응을 줄여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쨌든 이런 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올 해에는 조금 줄어들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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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21-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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