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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겨울이 되면 성형외과는 조금씩 바빠진다. 경기가 나쁘다 하지만, 그래도 여름철보다는 조금 더 분주한 편이다.

 

이럴 때 수술을 위해 방문하기도 하지만 점을 빼려고 찾아오기도 하는데, 땀이 나는 여름철보다는 관리하기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얼마 전 어린 학생과 함께 방문한 할머니도 비슷한 경우였다.

 

직장생활을 하는 어머니 때문에 할머니와 함께 사는 학생이 할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아왔다. 어린 학생이 겨울방학을 맞아 친구 몇몇이 쌍꺼풀 수술을 한다고 하자 자신도 수술하겠다고 할머니와 어머니를 졸랐나 보다.

 

학생들이 흔히 사용하는 쌍꺼풀 액을 1년도 넘게 사용한 눈꺼풀이라 벌써 눈꺼풀에 처짐이 생겨서 수술이 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눈매교정이나 트임을 해야 할 상황이지만, 아직 눈이 다 자라지 않은 상태라 고민 끝에, 절개하지 않고 매몰법으로 눈을 키워줄 수 있는 비절개 눈매교정을 하기로 했다.

 

함께 방문한 할머니를 보고 있으니, 얼굴에 점이나 색소침착이 된 반점이 많이 생겨, 함께 오신 김에 점도 좀 빼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그런지 손녀의 수술비도 겨우 감당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볼 한 가운데 콩알만큼 튀어나온 검은 점, 이것만큼은 제거해야 한다고 굳이 우겨서 이것만 제거하기로 했다.

 

손녀의 수술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좌우 특별한 차이 없이 쌍꺼풀이 잘 만들어졌다. 부기가 아직 가시지는 않았지만, 또렷해진 눈동자가 좋은 결과를 예상하게 하는 것으로 보여서 함께 방문한 조손(祖孫)이 모두 만족했다.

 

이틀 뒤, 할머니의 수술을 하게 되었다. 마취를 충분히 하고 혹시나 모를 가능성 때문에 점 주위와 바닥까지 여유를 가지고 모든 조직을 함께 제거해 주었다.

 

수술 전에 조직검사를 맡겨 볼까 하고 환자와 의논했으나 굳이 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들었지만, 의사의 호기심이 작동해서 병원비용으로 조직검사를 맡기고 말았다.

 

할머니의 상처 봉합은 깨끗하게 이루어졌다.

그런데, 좋지 않은 예감은 왜 항상 적중하는 것일까?

 

다음 날, 의뢰했던 조직검사의 답변이 우선 전화로 전해졌다. 전화기 너머로 전해오는 목소리는 피부암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제거된 조직의 가장자리에서는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아 안전하게 제거된 것이라니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일주일 후 정식 결과문서가 병원으로 전달되었다. 기저세포암(基底細胞癌)이라는 것이었다.

피부암이기는 하지만 원거리로 원격 전이는 드문 종류이고 수술로 암이 모두 제거된 것이라 그 자리에서 다시 암이 자라날 위험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더 이상의 검사나 항암 치료도 필요 없이 치료를 종결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다만 이런 종류의 피부암이 다른 부위에 다시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앞으로 피부에 있는 검은 점 중 하나에 뭔가 생기는 신호가 보이면 이제 바로 병원에서 확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해서 한 시름 놓아도 될 것 같다고 한다.

 

특별한 문제점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보호자와 할머니를 함께 만나 조직검사 소견을 이야기해 주었다.

 

암이라는 말에 놀라 불안해하는 환자에게 위암, 폐암, 대장암 같은 암과는 달리 피부암이라는 종류는 특별한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안전하게 제거되고 나면 아무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에 안도하는 눈빛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동안 할머니의 얼굴 속에는 검은 색소가 침착된 반점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족을 위해 정신없이 바쁘게 살던 젊은 시절, 얼굴에 작은 점들이 생기는 것도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 점들이 점점 커지고 튀어 오르는 것도 모른 채 살아왔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좀 쉬엄쉬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해 보았지만, 곧 직장생활을 하게 된 딸을 대신해 손녀를 돌보아야 할 팔자가 되면서 쉴 시간도 없이 다시 고된 일상으로 내몰린 것이다.

 

또다시 자신보다는 손녀를 위해 사는 생활을 하다가 이제야 자신의 몸에서 자라난 암 덩어리 하나를 제거하는 자신만을 위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생각하면 참 고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요즘 우리 주변 노인들의 일상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착찹한 느낌마저 들었다.

 

할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시면 돼요.’라고 위로의 한 마디로 할머니를 안심시켜 드렸다. 나머지 자세한 주의사항은 함께 온 보호자에게 전해주고 귀가시켰다.

 

추운 겨울철, 이 가정의 걱정거리를 하나 덜어드린 셈이니, 나도 이들을 위해 좋은 일 하나를 한 셈이 아닐까 하는 뿌듯한 마음을 나 혼자 가져 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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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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