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소비자의 권리
“요즘 많이 바쁘지 않나요?” 요즘 흔히 주위사람들로부터 듣는 소리다. 아무래도 요즘은 수능시험을 치고 나 후라서 그런지 수험생들도 많이 찾아오고, 여름보다는 수술하고 회복하기 위한 시간을 내기가 편해서 그런지 전통적으로 바쁜 시즌이다. 대략 12월부터 설날까지가 피크라고 부른다.
그래서 새로이 병원을 찾아오는 지인들도 많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순례하듯이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마치 여러 곳을 들러 가격이나 다른 조건들을 비교해가면서 상품을 고르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진료실로 찾아온 사람들과 몇 마디 이야기해 보면, 서로 생각하는 부분이 비슷하거나 내가 제시하는 해결방법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마음이 통한다 싶으면,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컷 설명 잘 해주고 나서 다른 병원에도 가보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보면 나도 ‘을’과 별 차이가 없구나 하는 생각에 맥이 빠지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도 이해가 되는 것이, 요즘 같은 세상에 다들 처음 보고 나서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는 수술을 한 번에 선택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도 물건 하나 살 때 이것저것 까다롭게 따지고 고르기도 하고 또, 사기로 했다가도 마음을 바꾸기도 하는데, 어떻게 이런 수술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내 진료실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좀 더 편안하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또 스스로 결정하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다른 병원도 가보세요. 병원마다 수술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곳을 찾는 노력을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해 준다.
의료라는 것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있기 마련이니, 아무래도 소비자로서 알아야 할 점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병원이 좋은 병원인지 물어보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이야기하는 원칙이 있다. 우선 가급적 성형외과 전문의를 찾아가라는 것. 자세하고 솔직한 설명을 의사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는 곳에 가라는 것. 한 곳에 자리 잡고 오랫동안 지켜온 병원을 가라는 것 등이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성형수술을 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곳은 아무래도 성형외과 전문의가 유일하다. 요즘 다른 과에서 성형수술을 한다고 많은 병원들이 생기고 있지만, 수련과정이나 다른 모든 실력이나 경험에서는 성형외과 전문의가 가장 앞선다. 그것은 수술 후 다른 문제가 생겼을 때 더 차이가 난다. 수술의 수준이나 사후 처치 모든 면에서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결국 좀 더 안전한 수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수술을 담당할 의사가 처음 수술할 때부터 수술 후까지의 모든 과정을 함께 해 주는 병원을 찾아가라는 것이다. 병원을 처음 찾아가면 코디네이터나 실장이란 사람이 의사를 만나기 전에 수술에 관한 모든 설명이나 수술비 상담 같은 것을 도맡아서 하는 경우가 요즘 많이 생기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 올바른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아무래도 솔직한 자신의 상태, 수술과정, 수술 후 관리, 수술 후에 알아두어야 할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수술 후 생길 지도 모르는 부작용에 관한 설명은 아예 없다.
수술을 하면 좋은 점만 계속 이야기한다. 심지어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까지 부추켜서 수술을 하게 만드는 경우도 흔히 있다. 그래야 병원의 수술 실적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안전은 뒤처지게 되는 셈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한 군데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는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다. 문제가 많은 병원이 오랫동안 한 곳에 있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한 곳에 오랫동안 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큰 탈 없이 무리하지 않고 문제없이 환자관리가 잘 되고 있는 믿을 만한 병원이라는 반증이다.
요즘 매스컴을 통해서 여러 가지 성형수술에 대한 사고들이 많이 보도되고 있다. 의사로서 이러한 것들을 잘 살펴보면 하나같이 기본적인 것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 가장 많이 있다. 기본적인 환자의 건강상태를 잘 살펴서, 무리한 수술을 하지 않았는지, 마취, 수술, 회복 중에 환자가 안전한지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 점을 소홀히 해서 생긴 것들이 대부분이다.
의료 소비자로서 기본을 지키고 원칙대로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